『사회분업론』을 읽고 – 분업과 애국 (겨울방학 글쓰기교실 2)

Written on February 10, 2014

『사회분업론』 1권 요약

<제1장 분업의="" 기능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

분업에는 통상적으로 언급되는 경제적 기능도 있지만, 그것보다 핵심적인 기능은 개인의 존재가 집단에 비해 부각되는 산업사회에서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분업에 기초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질서, 혹은 조화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분업이 산업사회 하에서의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연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 연대는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으므로, 이를 나타내는 지표인 법률을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매개변수로서 선정된 법률을 두 종류의 연대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누어, 즉 제제법과 배상법으로 나누어 탐구해 본다면 상응하는 사회적 연대의 원인과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장 동질성에 의한 기계적 연대, 제3장 분업에 의한 유기적 연대>

연대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동일한 사항이 모여서 연대를 이룰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사항들이 모여서 상보적으로 연대를 이룰 수도 있다. 제제법에 해당하는 연대가 바로 전자에 해당하는 동질성에 의한 기계적 연대이다. 기계적 연대하에서 개인의식은 사회의 의지, 즉 집단의식에 거의 흡수된다. 집단의식은 해당 사회가 균질적인 하나의 덩어리로서 기능하도록 한다. 이러한 집단의식은 대게 ‘거룩한 것’으로 여겨져 종교적 행위의 대상이 된다. 이때의 형벌은 다른 무엇보다 집단의식에 대한 공격을 처벌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배상법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유기적 연대이다. 배상법은 원 상태로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배상적 법률이 규제하는 사회적 관계와 그 법률이 표현하는 연대는 사회분업에서 비롯된다. 분업이 일어남에 따라 개인은 분명한 개인의식과 고유한 행동영역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자유주의자들의 추측과는 달리 이러한 개인의식의 확장은 유기적 연대에서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시킨다. 즉 분업은 사회의 상이한 기능들이 조화롭게 협력하도록 하여 연대를 강화한다.

<제4장 앞에서="" 논의한="" 이론에="" 대한="" 또="" 다른="" 증거들="">

분업이 확장됨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이행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도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직업집단의 동질성은 더 커진다. 즉, 현대 산업사회로 다가갈수록 분업은 더 발전하였다. 이에 발맞춰 법 형식 또한 제제적인 형태에서 배상적 형태로 변화하였다. 과거의 법은 ‘거룩한 것’에 대한 감정에 기반하는 종교적 색채를 띠었고, 필연적으로 억압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는 그렇지 않다.

<제5장 유기적 연대의 점진적 중요성과 그 귀결, 제6장 유기적 연대의 점진적 중요성과 그 귀결(앞 장의 계속), 제7장 유기적 연대와 계약적 연대>

분업이 자연적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유기적 연대는 기계적 연대에 대해 우위를 점한다. 동질성에 의거한 연대는 사회가 비균질적으로 변화할수록 쉽게 붕괴하고 마나, 노동의 분화에 의한 연대는 분업에 따라 오히려 강화된다. 따라서 유기적 연대의 중요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그 결과 수많은 범죄 유형들이 점진적으로 해체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집단의식의 정수인 종교가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였다. 세속화의 진행은 집단의식의 평균적 강도를 약화시킨다. 그리고 잠언과 격언 또한 집단의식이 함축된 요소이기에, 점차 퇴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토나 혈통에 기반한 과거의 분절적 기관은 점차 해체단계를 밟고 있으며, 이를 직업집단이라는 유기적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기관이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개인의식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적 연대가 붕괴할 수 있고, 사회는 계약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자유주의도 옳지 않으며, 개인의식을 집단의식에 귀속시켜 원시적 동질성으로 회귀하고자 한 공산주의도 옳지 않다.

산업사회, 분업과 애국심, 그리고 이념 – 한국을 중심으로

뒤르케임은 산업사회의 속성 중 분업에 주목하여 위와 같은 논의를 펼쳐나가는 데에 성공하였다. 산업사회에서 분업은 사회적 관계에서 연대를 가능하게하는 새로운 도덕법칙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분업만 달상한 것은 아니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각 국가들은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로 재편되었다. 국민국가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국심이라는 것은, 국민들을 하나의 어떠한 이념으로 묶어내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개인의식의 확장이라기보다 오히려 집단의식의 확장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분업과 애국심은 모순적 관계인 것처럼 보임에도 공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애국심과 집단의식은 층위가 달라 공존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애국심이 집단의식에 해당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분업에 기초한 유기적 연대라는 것이 허상인 것은 아닌가?
물론 애국심이라는 것이 국가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조장된 것이기에, 분업을 지항햐는 사회의 경향성을 거스를 수 있었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국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의도한다 할지라도, 사회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어떠한 배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적어도 애국심이라는 모토가 사회에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은 시기에는 애국심에 적합한 사회적 적합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떠한 환경이 사회적 적합성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한국의 예를 살펴보자.
한국에서 애국심은 급격한 산업화와 맞물려서 나타났다. 급격한 산업화는 대규모 이촌향도 현상을 일으켰다. 즉 다수의 사람들이 기존의 기계적 연대로부터 분리되어 도시로 내몰린 것이다. 뒤르케임에 따르면 이렇게 이동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유기적 연대를 형성하여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기계적 연대로부터 갓 분리된 개인이 유기적 연대를 인식하고 이에 안식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기계적 연대는 가시적이고 친숙하다. 가족이 있고, 친적이 있고, 마을이 있으며, 이러한 기계적 연대 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유기적 연대는 기계적 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 분업은 일어나고 있으되, 우리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분업사회에서 어떠한 서비스는 많은 경우 익명으로 제공된다. 분업으로 인한 서비스의 제공은 각 개인, 더 나아가 사회의 존속에 필수적인 요소임은 분명하나, 이를 개인이 체감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공동체를 떠나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기에, 갑작스러운 유대감의 단절을 경함할 수밖에 없었으며, 기계적 연대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에 새로운 종류의 연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무의식적 해결책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났다. 하나는 과거의 가시적, 직감적인 기계적 연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기계적 연대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가 표출되는 현상으로는 귀향에 대한 열망, 전통에 대한 향수, 산업사화에 대한 러다이트적 운동일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가 표출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애국심이다.
애국심에 있어서 새로운 신(집단의식)은 국가이다. 국가는 새로운 기계적 연대의 대상으로서, 모든 국민들을 ‘한국인’으로 묶어낸다. 여기에 개인의 개성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분업에 기초한 유기적 연대가 실제적으로 사회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지라도, 인식적 차원에서는 애국심이야말로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종교로 자리매김한다. 기존 기계적 연대로부터의 갑작스러운 소외는, 새로운 연대에의 열망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정부의 의도와도 맞물려 애국심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최근까지도 지속되어왔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점은 최근 들어 애국심에 대한 도전의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10대, 20대에서 애국심은 때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10대, 20대가 일관된 성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소득 및 학력 등의 척도에 따라 애국심에 대해 다양한 방향성과 세기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애국이라는 모토가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사회적 연대의 전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소위 386세대, 아니면 그보다 조금 앞 세대는 갑작스러운 기계적 연대로부터의 분리를 경험하여 애국심으로의 유인이 매우 강하였다. 그러나 현재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세대는 대부분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경우가 많다. 즉 앞 세대가 경험해야 했던 당혹감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계적 연대에 대한 필요도 그다지 크지 않고, 날 때부터 익숙했던 유기적 연대 안에서야 그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현재 젊은 세대에서 애국심에 대한 열망은 점차 사그라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