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이슬람 (중동학회 발제 01)
Ⅰ. 중앙아시아 이슬람 개관
1. 중앙아시아 지정학 및 이슬람 요인
기원전 8세기에 전파
수피즘 성향의 국민의식과 일반생활 관습에의 민족적 정체성化
제국주의 세력에 맞선 정신적 인식 체계
20세기 이전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를 거쳐 반러시아적 경향
20세기 국제주의 소비에트에서는 저항적 요소 감소
1991 독립 이후 국가의 신앙적, 이념적 요소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반정부적 성향의 급진적 원리주의 단체 출현
2. 20세기 이전 중앙아시아 이슬람 역사
7세기 우마이야조의 침략 이전까지는 조로아스터교가 지배적이었음. 11-12세기 호레즘 왕조, 13세기 몽골, 14세기 티무르, 16세기 우즈베크 카자흐 공동체, 16세기 이후 러시아(이반4세). 모스크바 공국 하에서 무슬림 고유의 정치조적 폐지
19세기 중엽 카프카스 전쟁 종결 이후 공식적으로 러시아 점령
Fork Islam, Parallel Islam, 민중 이슬람, Everyday Islam, Non-offical Islam, 수피즘(결혼, 장례, 성묘숭배, 종교축일, 예배, 회합, 순례, 복장, 여성 사회활동 제한의 이슬람 예식) <-> 공인 이슬람
이후 사회적 악에 대한 저항적 요소로 발전(ex 안디잔 저항). 그러나 북카프카스에 비해 순응적, 전통적 입장(수피즘 적).
3. 20세기 중앙아시아 이슬람 역사
바스마치 운동(1918-1929) : 종교투쟁&민족운동의 성격. Pan-Islamism의 영향. 대중의 지지, 영국의 지원, 소비에트 행정관의 억압에 저항, 볼셰비키의 ‘혁명전쟁’ 저지, 주권국가 건설 목표. 결국 소비에트의 개입으로 실패. 이후 러시아 문화의 정책적 유입.
스탈린 통치 : 反러시아vs反이슬람.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1의 영향으로 이슬람 억압 정책 추진. 와크프(Vakf) 몰수, 사원 폐쇄, 샤리아법정 폐지, 성직자 탄압, 무슬림학교 금지, 아랍문자사용 금지, 5개 공화국으로 분할. -> 이슬람이 고유 종교 정체성으로 기능하지 못함.
흐루시초프 통치 : 反이슬람 유지. 60년대 물라(이슬람선생) 출현, 비합법적 종교활동 묵인. 무슬림 국가와의 국경 봉쇄, 알파벳을 아라비아어, 라틴어, 키릴문자로 변화시킴.
브레즈네프 통치 : 탄압중지. ‘이슬람의 부흥’. 미국과의 체제경쟁의 일환으로 이슬람 국가에 대해 친우방 외교정책을 실시하였음. 세속적 단체와 이슬람 추종기관이 명확히 분열함. 아직 지하단체, 급진 원리주의 단체는 광범위하게 형성되지는 않음. SADUM2옹호.
고르바초프 통치 : 이슬람의 부흥.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활동&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외부적 환경 변화.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 중동아랍과의 이슬람교류, 원리주의에 대한 긍정적 관점 -> 이슬람의 정치화.
4. 1991년 독립 이후 중앙아시아 이슬람
이슬람의 변화에 대한 두가지 시각
전통주의 : 중앙아시아 사회양식과 국민의식은 급진적으로 변하지 않았음. 수피즘 등 전통적 이슬람의 부흥. 소비에트 통치 하에서도 명맥을 이어왔음. 역사, 문화, 전통사회와 관련.
원리주의 : 급진적으로 변화함. 초기 무함마드와 이후의 4대 칼리프 시절의 순수한 이슬람 부각. ‘코란과 순나3’의 권위만을 인정함. 서구에 대한 거부. 중동아랍에 역사적 기원을 둠.
서방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경쟁 : 우즈베키스탄(GUUAM가입->탈퇴->SCO가입), 카자흐스탄(러시아, 서방의 투자 적극 유치)
자국의 내부 안정성 추구 : 과거 구공산주의자와 정치 엘리트들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정부. 급진적 이슬람주의 억압(우즈베키스탄의 강력한 탄압정책->지역적 수준에 고립됨)
이슬람의 반외세, 반정부적 성향 : 야당세력의 탈민주주의, 이슬람근본주의化. 우즈베키스탄 야당, 타지키스탄 내전4. 정부가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친러 입장이다보니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는 반러시아 입장을 가짐(우즈베키스탄은 안디잔 사태5, 레몬혁명6으로 인해 친러化)
5.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전망
중앙아시아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정신적 토대는 상당부분 대 러시아 저항정신에서 배태됨
중앙아시아 특유의 씨족적, 종족적, 투르크적 민족문화의 통합성 속에 이슬람이 유입됨
지금도 체제전환의 역사적 과정이 진행 중. 앞으로도 지속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
Ⅱ. 중앙아시아와 중동아랍의 이슬람 원리주의
1. 중동아랍 이슬람 원리주의의 기원과 특성
기능적 정의 : 공적, 사적 행동 규범이 이슬람의 초창기 정신으로 회귀되는 것
서구의 정의 : 70년 이후 이슬람의 붐 시기에 근동에 출현한 이슬람 정당, 이슬람 단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것
기원 : 18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와하비(Wahhabi)운동이 핵심적 사상의 체계가 됨. ‘무하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합’, ‘이븐 사우드7’가 주도. 14세기 ‘이븐 타이미야’에 의한 한발리파 사상 계승. 초창기에는 폭력적 현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음
일반국민들의 고통, 도덕적 가치의 상실, 19세기 반서구적 분위기로 인함
무슬림 형제단의 출현 : 원리주의의 대표적 단체. 1928년 설립. 칼리파 신정국가의 창설을 목표로 함. 강한 투쟁적 이념을 설파함.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적 연대 : 원리주의가 폭력적 성향을 급속도로 띠게 함. 아랍민족의 민족적, 종교적 감정에 상처를 입힘. ‘알아크사 방화사건’.
2. 중앙아시아 이슬람 원리주의의 기원과 특성
독립이전 : 19세기에 와히비즘이 소개됨. 범이슬람주의, 와하비즘, 네오반디즘. 제정 러시아에 저항하며 저항적 특성을 가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주로 유입됨.
70년대 : 원리주의 경향이 나타남. 사우디로부터 유입되어 페르가나계곡 중심으로 와하비주의 출현. 소비에트식 경제정책의 한계. 소비에트가 중동아랍과 협력관계를 가지면서 가능하게 됨. 무슬림의 정치적 행동이 등장함.
80년대 : 페레스트로이카에 힘입어 이슬람 부흥. 탄압정책 완화. 공인이슬람 세력이 약화되고 수피즘, 원리주의가 부흥함.
해외 무슬림 선교사들의 선교(아랍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 + 빈곤계층 사회의 반발(회귀정신) + 전통이슬람의 민족자긍심 고양 + 사상적 진공상태 -> 외적 동력이 더불어 내적 동력이 있었음.
타지키스탄 내전을 통해 급진적 성격 강화. 전통이슬람보다 원리주의가 대표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퍼짐.
각 국가는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원리주의 단체 탄압.
3. 중앙아시아와 중동아랍 이슬람 원리주의의 연관성
중앙아시아는 중동아랍 이슬람의 포교대상이 됨. 그러나 70년대에 이미 원리주의가 배태하고 있었음.
공통적으로 정부지배체제를 비판하고 신정국가 건설을 추구(‘해방당’의 활동이 활발함), 이념적 페러다임의 특성, 급진적 폭력적 특성, 중앙아시아로의 중동아랍의 지원과 후원(자금, 선교사)의 측면에서 연관성을 가짐.
터키 선교사들은 누르커스 소속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쳐, 초기에는 원리주의를 들여오다 탄압을 받아 낙쉬반디야와 카다리야 교단이 수피즘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바뀜. 그러나 이마저도 탄압.
4. 중앙아시아 이슬람 원리주의의 전망
원리주의의 내부발전과정 : 60-70년대 이슬람붐의 형성, 중동아랍 원리주의의 내부적 발전, 중동과 중앙아시아 간 이슬람주의자 교류.
현재도 정치지도자, 정치환경에 의한 체제전환의 과정에 있음.
앞으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제할 것으로 예상됨. 전통적 이슬람의 부흥을 강조하는 정책. 외부적 요인이 큼. 해외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을 것. 총체적 이해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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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sm in one country. 세계적인 공산주의 혁명이 없어도 소련 하나의 국가만으로 사회주의건설이 가능하다는 주장. ‘형식에 있어서는 민족주의,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러시아민족 중심 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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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 board of Central Asia and Kazakhstan. 1943-1991. 중앙아시아 및 카자흐스탄 무슬림 영적 지도회. 공인이슬람. 무슬림 종무 관리국. 무프티앗(Muftiat). 공인된 활동만 허락함으로써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을 억압하는 역할을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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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의 언행. 하디스에 기록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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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7. 타지크 저항 연합(UTO)와 정부군의 대립.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정부군 지원. 휴전협정의 형태로 종결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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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 군대의 강경 진압으로 시민의 대부분이 사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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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혁명(Tulip Revolution), 제1차 키르기스 혁명(First Kyrgyz Revolution), 레몬혁명, 핑크혁명으로 불림. 2005년 2월 27일과 3월 13일 두 번에 걸쳐서 행해진 키르기스스탄의 의회 선거 이후 일어난 사건. 당시 키르기스스탄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전국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국적으로 반정부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5년간 장기 집권했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피했고, 니콜라이 타나예프 총리 역시 사임했다. 이후 선거를 거쳐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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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