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Written on January 14, 2020

구름 사이로 떠오르던 바로 그 순간에 비행기는 단번에 믿을 수 없는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비행기를 기울게 하는 파도 하나 없었다. 방파제를 뛰어넘는 배처럼 그는 예정되어 있던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만의 행복한 섬들처럼 숨어있는 하늘의 한 부분, 미지의 하늘에 들어서 있는 것이었다. 배힝기 아래에서는 돌풍과 폭우의 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3천 미터의 두께의 딴 세상을 형성하고 있지만, 수정과 눈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폭풍의 얼굴은 천체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붙잡아주고 있던 수천 개의 암흑의 팔이 그를 놓아버린 것이었따. 한동안 꽃밭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죄수처럼 그를 결박했던 줄이 풀려져 있었다.
‘정말 아름답군’ 하고 파비앵은 생각했다. 그는 그 자신과 무선기사 외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 외의 다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보물처럼 밀집되어 있는 별들 사이를 떠돌고 있엇다. 그들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보물의 방에 갇혀버린 전설속의 도둑과 같은 신세였다. 그들은 차디찬 보석들 속에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몸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었다.

피비앵의 죽음으로 인해 내일부터는 이 부인에게도 모든 행위와 모든 물건이 의미를 잃기 시작할 것이다. 파비앵이라는 존재는 그 집에서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해서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사물마저 갑자기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그저 허망하게만 보일 테니까…”
그의 눈길이 전신들에 머물렀다
‘이제는 의미를 상실해버린 이 보고들… 이런 것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죽음이 스며드는 것이다.’

시간이 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