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발제하는 법

Written on March 18, 2018

출처: 김영민 선생님 홈페이지. http://polisci.snu.ac.kr/bbs/view.php?id=kimym_etc&no=8

김영민 선생님 글이다.


발제는 크게 보아 요약, 해석, 문제의 제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1. 요약

    • 해당문건이 충분히 현대적인 논문/저서인 경우: 해당 문건의 thesis를 파악해내고 그 thesis를 지탱하는 argument를 분석한다.
    • 고전 자료인 경우: 더 이상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자료의 경우에는, 요약이란 상당부분 (우리가 보다 이해하기 용이한 언어로의) 재서술을 의미하게 된다. 해당 글이 argument를 담고 있으면, 그 argument를 재구성한다.
    • 발제에서 수행하는 요약은 반드시 해당 reading의 순서대로 요약할 필요는 없다. (추리소설의 경우처럼) 가장 효과적인 분석을 위해, 내용의 재배치를 통한 재구성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2. 해석

    • 요약 혹은 재서술된 텍스트에 대해서 자신의 해석을 제공한다. 물론, 요약/재서술과정에 이미 자신의 해석이 불가피하게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요약과 해석을 분리해서 행한다. 그 해석은 토론의 대상이 될 정도로 충분히 contestable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거나 동의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동시에 제정신을 가진 그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허황한 이야기도 할 필요가 없다.
  3. 문제의 제기

    • 질문의 형태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제한된 수업시간을 감안할 때, 그 질문은 막연하게 큰 질문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동료학생들이 그 시점에서 가지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해도 곤란하다.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이 질문이 과연 수업시간에 효과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구체적인 질문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문제를 구체화하는 방법: 모두들 같이 읽어온 텍스트가 있을 때는, 그 텍스트의 특정 구절에 근거하여 질문을 만드는 것이, 문제를 구체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복수의 텍스트를 함께 읽었을 때는 비교의 형식을 띤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들 함께 읽지 않은 어떤 텍스트와의 갑작스런 비교는 쉽지 않다.) 어떤 경우든, 창의적인 시각은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단지 그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정적인 대답이나 통찰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자신의 대답/통찰을 먼저 제기할 필요는 없다. 그 순서는 토론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상의 작업을 수행할 때, 최대한 분명한 어휘와 논조를 구사한다. 아아, 애매모호함은 예술작품이나 절세미녀(혹은 꽃미남)의 마음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우리는 명료함을 추구한다.

수업시간 전에,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와 같은 채비를 마치고 세미나에 참여하는 이를 일러, “세미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2007. 5. 김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