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한다는 것, 번역을 한다는 것,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

Written on January 30, 2017

대학을 다닐만큼 다닌 나이가 되고 나서 뒤돌아보니

나에게 대학생활이 뭘 남겨줬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한 공부는 골동품 모으기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을 하나의 씨줄로 묶어낼 수 있을까.

이 주제는 좀 더 천착해서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른 글에서 천천히 다뤄보자.


영어->일본어 번역을 하다가

내가 본성(本性)으로 번역한 것을 일본 친구가 성질(性質)로 바로잡아준 일이 있었다.

사실 한국어로 번역했다면 아무도 나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을것 같다.

본성이나 성질이나, 여튼 의미는 통한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본성과 성질은 의미가 같지 않다. 아니, 다른 단어고 다른 의미를 품고있으며 특정 상황에서 보다 더 적합한 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한글로 쓸때는 그 “보다 더 적합한” 용법을 위한 신경을 덜쓰는게 아닐까? 라고 자문하게 되었을때 자신이 없다.

일본어 번역을 하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얘네는 주어/목적어/보어/술어의 위치에 우리나라보다 민감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은 문장성분이 마구 섞여있어도 조사를 통해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일본어도 이는 마찬가지인데, 번역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어순을 맞추려고 한다. 영어가 주어+술어+부사어+관형어+명사어로 구성되어 있다면, 가령 I really like old buildings 라면, 번역 문장은 주어+관형어+명사어+부사어+술어의 순으로 이루어지며, 이 순서가 뒤바뀌면 틀렸다고 지적한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문장성분의 위치에 대해서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어쩐지인지는 몰라도, 관형어가 명사어를 수식하면 반드시 붙여주고, 부사어가 술어를 수식하면 이 둘을 반드시 붙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정말 낡은 건물을 좋아해”라고 번역하면 틀렸다 고 본다는 거다. 정답은 “나는 낡은 건물을 정말 좋아해”이다. 이런 어순에서의 엄격함이 미묘하게 전체적인 가독성을 향상시킨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다시 단어의 적합한 사용으로 돌아가 예를 들어보자.

구성/구조/성질/본성/본질/특성/속성/요소/특징/결과/내용/정의/구현/원리 라는 단어들이 있다.

이 단어들은 각각 다른 단어들이고, 겹치는 부분도 많지만 제각각의 뉘앙스가 다 다를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단어를 잘 구분해서 쓰는 듯도 하다.

공구함의 구성(품)이라고 우리는 말하지, 공구함의 특성 / 공구함의 구조 / 공구함의 성질 / 공구함의 정의 / 공구함의 구현 이라는 표현들에는 어색함을 느낀다.

이건 좋다. 하지만 공구함이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 온다면 어떨까?

  1. 자본주의의 특성

자본주의는 …

위 문장처럼 자본주의의 특성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내용에는 무엇이 와야할 것 같은가? 내 느낌상에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추구를 윤리로 편입시키는 이념”이라는 등의 내용이 본문에서 펼쳐질 것으로 느껴진다.

그럼 만일 “특성”이 아니라 다른 단어였다면? 가령 자본주의의 구조/성질/본성/본질/속성/요소/특징/결과/내용/정의/구현/원리 등이었다면? 어떤 내용이 본문에 와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특성”이라는 단어 하에서 쓴 내용과 그렇게 다른 결과물이 나올 지 의문이다. 분명히 다른 단어들인데, 내용물은 대동소이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다른 추상적 개념이라도 유사할 것 같다. 민족주의라던가, 사회화라던가, 세속화라던가, 심지어 전공인 종교 까지도…

결국 개념의 추상화가 구조적으로(한 문장도 위의 열거된 단어 없이 작성할 수 없는 궁핍한 어휘력이다)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자본주의의 무언가(中見)는 어느것이 정의고, 어느것이 속성이며, 어느것이 요소고, 어느것이 원리인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저 개념어들이 나열식으로 열거식으로 대강의 경계 선 안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거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정의로부터 시작하는 논리적으로(마찬가지로 일본어 번역을 하다가 느낀건데, 이 논리적으로라는 단어도 내가 이론적으로라는 단어와 동등하게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두 가지의 용법은 다르다) 체계화된 생각이 부재하는 거다. 정의와 속성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내적인 지적 빈곤을 숨기는게 아닐까?


이러한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그래도 뭐 밥벌이는 하겠지 싶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