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딜레마 스트레제만 (국제정치학 예습과제 03)

Written on September 17, 2013

Q. 키신저가 말하는 승자들의 딜레마란 무엇이고 스트레제만과 히틀러의 정책은 어떻게 달랐는가?


A. 전후 독일을 억제하는 데에 있어 승전국은 두 가지 측면에서 딜레마에 직면하였다. 전후 국제 체제인 베르사유 체제가 집단안전보장이라는 모호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첫 번째이고, 영국과 프랑스가 상호 대립하여 독일의 성장과 독일-소련 협력을 막지 못한 것이 두 번째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은 집단안전보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안보를 보장하고자 하였다. 집단안전보장은 미국의 윌슨이 도입한 국제연맹 하에서의 개념으로 이 체제는 기존의 동맹체제와는 달리 적을 상정하지 않으며, 어떠한 평화 위협에도 대응한다는 개념으로 성립되었다. 하지만 정치-지리적 요소와 국가의 이익이라는 전통적 관점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그럴듯한 가치중심으로 안보에 접근한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어 실효성이 매우 약했다. 역사적 실례에서 보듯이 일본, 이탈리아, 소련,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군사행동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관련없는 국가에의 군사개입을 각 국가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꺼림으로서 실제로 조약이 발동되어 집단안보체제가 가동되지는 못하였다. 나중에 독일-벨기에-프랑스가 맺은 르카르노 조약은 오히려 국제연맹의 집단안보체제가 가진 무력함을 반증하였다.

베르사유체제의 두 축인 영국과 프랑스가 상호 협력하지 못한 것도 승자들의 딜레마를 낳았다. 프랑스는 당장의 위협인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전후 처리에서 프랑스 및 승전국들은 여론의 기대에 떠밀려 독일에게 과다한 제제를 가하였다.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의 과다한 제제에 반발하자, 프랑스는 독일이 배상금 및 기타 조항들을 이행하게 하기 위해 벨기에와 함께 루르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에 대한 전통적인 경계심을 강화하고 만다. 독일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의 동맹이 절실했음에도, 영국은 지속적으로 프랑스를 의심하고 유보적 태도를 취했으며, 프랑스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동부유럽의 복잡한 상황에 끌려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은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를 얻어 프랑스로의 배상금을 일부 지불하고 산업화에 성공한다. 동시에 독일은 사회주의를 꺼려했으나 소련과의 실용적 연대를 통해 유럽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이 때, 승전국들이 승자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틈을 타 스트레제만은 철저한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패전 이전의 위상을 회복하고, 배상금 부담을 완화하며, 군사력을 증강하고, 동쪽의 영토회복 및 오스트리아와의 연합을 추구하였다. 스트레제만 이전의 독일은 베르사유체제의 과다한 요구에 불복하였으나, 스트레제만은 이에 협조적으로 대응하며 실리적인 이득을 챙겼다.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산업화에 성공하고 러시아와 연합함으로써 프랑스의 국력을 뛰어넘는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로카르노조약을 통해 서부를 안정시키고 동부로의 확장을 꾀하였다. 하지만 스트레제만은 나찌와는 달리 무력적인 수단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외교적으로 실리를 챙기는 것을 추구하였다. 나찌는 스트레제만의 이러한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군사적 강경노선을 택하여 국내에서는 스트레제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야기하는 주범이 되었다. 따라서 스트레제만은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나치는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현실주의보다는 가치에 경도된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자료 정리

베르사유조약의 한계 – 너무 광범위(집단안전보장의 허구성) / 영프간 비협력
현실주의를 도외시하고 도덕규율 강조. 기존의 동맹체제에서 집단안전보장 체제로 전환
집단안전보장체제 – 적을 특정하지 않음. 어떠한 평화위협에도 대응. 모호함. 국내법과 유사하게 적용. 평화유지라는 상호이익을 전제함. 상황 발생시 상황에 대한 해석 필요 발생. 개입의지가 이전 동맹체제보다 상대적으로 낮음.
국익이 아니라 가치가 국제 판단 기준이 됨.
유럽 – 국익간의 충돌과 이를 막는 것이 외교. 당근과 채찍으로 특정이익을 공익과 연결
미국 – 복잡한 동맹체제가 전쟁을 부름. 도덕적 원리로 전쟁을 막음. 정치가의 복잡한 계산이 도덕을 가림.
베르사유조약에서 윌슨주의를 미국이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
영국여론이 처음에는 마지못해 따라갔으나 윌슨주의에 감화됨.
그러나 집단안전보장은 강대국의 침략행위를 막지못하는 한계를 보임.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소련 – 공산주의국가는 집단안전보장 가입을 꺼리고, 작은 나라는 관련없는 일에 개입하기를 꺼림. 미국도 유보적인 자세를 취함
UN미국의 주도 – 미국의 국익이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짐
유럽 지도자들이 윌슨주의에 설득됨.
프랑스의 침체와 독일의 성장
영국정치는 프랑스를 과다평가하고 독일을 과소평가하여 힘의균형 맞추기 실패
프랑스가 벨기에와 함께 라인지방을 점령하여 영국의 의심 가속
영국이 프랑스를 견제하는한 희망이 없음
독일도 프랑스의 견제에 긴장
영국은 프랑스와 연대함으로써 동유럽의 전쟁에 끌려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음
미국-영국의 프랑스의 독일압박 저지
영국은 유보적 자세로 개입하지 않음 – 독일 성장
그러자 프랑스는 국제연맹을 강화하여 국제동맹화 시도. 상호원조. 전쟁시 피해자를 도움. 가입하려면 군사력을 감축해야함. 국익보다 가치에 중점. 가입하려고 군비를 감축시 안보위협이 생긴다는 모순이 있음. 소련, 미국 불참. 영국도 불참. 무장해제를 전제로 폭력에 저항. 지리-정치적 고려가 성립을 어렵게 함. 국익이 아니라 가치중심. 선무장해제 후가입. 특정 적을 상정하지 않아 진행이 어려움. 과거 동맹에 비해 구속력이 약함.
영국이 독일의 무장 허용 – 독일 동유럽으로 확장가능. 입증체계가 없는 것이 무장해제를 증명하기 어렵게 함. 가입국가가 스스로 증명하는 체계. 국제기구 조사권한없음. 독일은 영국의 묵인하에 다른 조항도 조금씩 위반.
배상금 문제가 영-프 갈등 유발
여론의 기대치가 과대하게 높아 배상금을 추후에 정하기로 함. 실현가능성을 낮춤. 너무 과다한 액수. 1921에 정해짐. 독일은 화폐를 발행하여 지급. 무장해제 및 배상 지급 강요체계가 없음.
독일이 프랑스보다 성장하기 시작. 소련 독일없이 유럽경제 재건이 불가능해짐. 기회.

러시아 볼셰비키는 외교에 관심이 없었음.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외교에 대한 필요가 없음. 혁명이념을 전파만 하면 자본주의는 무너질것이라고 생각. 외교는 단지 혁명을 독려하는 역할. 전쟁의 끝과 혁명의 시작을 동일시->전쟁종결에 노력. 독일의 강경한 요구에도 이를 수용함.
사회주의와 외교 현실주의가 공존하기 시작. 자본주의가 존재하므로 잠정적인 자세를 취함. 결국 옛날처럼 국익이 최우선시 됨. 평화를 유지하면서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다림.
독일은 사회주의는 싫어하나 필요에 의해 러시아와 관계 형성. 폴란드-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지지. 왜냐하면 폴란드가 독일을 압박하기 위함이므로. 러시아 독일 연합의 필연성. 제노아 협약중에 러시아와 독일은 상호 조약을 맺음. 실용적 합작.

프랑스와 영국의 갈등관계에서 독일에서 걸출한 외교관 탄생. 스트레제만.
보상금 안냄, 무장해제 안함. 영국과 동맹도 못맺음. 독일-소련연합->프랑스의 루르지방 점령. 독일압박시도. 독일은 소극적 저항정책. 이에 미국이 라인지역에서 철수함.
프랑스의 루르지방 지배 어려움.
독일이 프랑스를 압도하는 것을 막기위해 국제연맹 강화 시도.
독일은 배상 기한을 유보하고 정치-군사 제약 무력화 목적.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에 저항하면 타 국가가 위협을 가할 것이고, 협력하면 국내여론의 불만이 들끓을 것임.
스트레제만 이전까지는 저항적 자세를 취함.
재건을 위한 융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협력적 자세를 취함.
영국은 프랑스 압박 및 소련의 혁명을 막기위해 독일을 지원. 지원이 성공했을시에 대한 고려가 영국은 부족했음. 독일의 야심 과소평가.
독일은 미국의 융자로 프랑스 배상금을 지불하고 산업발전. 프랑스의 딜레마.
독일이 군사를 재건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독일은 베르사유체제에 저항할 것이고 협력은 멈출 것이라고 생각됨.
로카르노조약 채결. 전통동맹과 집단안전보장의 결합형태. 특정국가를 명시하지 않는 데에서 집단안전보장적 성격을 띰.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
로카르노 자체가 국제연맹의 집단안전보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반증. 공격자가 명시되지 않아 군사행동이 어려움. 로카르노조약으로 인해 독일의 동쪽으로의 확장 야심이 촉진됨. 로카르노는 베르사유 체제에 종언을 고함. 승자와 패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짐.
베르사유는 외교관들의 개인적인 긍정적 관계에 힘입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함. 원초적으로 문제가 많은 방식.
쳄벌레인은 라인지방까지 안보를 확대하려 함. 브리앙은 독일과 화해 추진(현실적인 이유로)-하지만 국내에서 인기가 없음. 프랑스는 약한데, 여론은 강한데서 나오는 딜레마.
조약추진하나 여론의 반대에 부딛혀 프랑스의 조약 철수. 독일 여론도 부정적.
외교적으로 실용적이기보다 도덕적 담론이 범람함. 일반원칙론. 현실도피적.
독일로의 자본 집중과 산업화. 특히 미국의 도움.
독일의 재무장 시도. 독일은 국제 연맹을 이용 군사에서의 동등함 요구. 프랑스의 수비적 자세는 독일의 동쪽으로의 야심을 막지 못함.
인기영합적인 공허한 외교조약이 판침. 동어반복적 조약. 이로인해 프랑스는 라인에서 5년 일찍 철수.
독일은 프랑스를 압박하고 소련도 막으려 함. 독일 러시아는 상호 중립조약을 맺고 같이 폴란드 압박. 국내의 국가주의가 성장하여 스트레제만의 인기는 오히려 떨어짐. 로카르노체제에 대한 독일내 반감 증가.
스트레제만은 당시에는 인격자로 명성이 높았으나, 나중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재평가됨. 전쟁이전으로 독일 복구, 보상금 완화, 군사력증강, 동쪽 영토 회복, 오스트리아와의 동맹 추구. 독일의 강성함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추구. 하지만 무력은 사용하려 하지 않음. 나찌가 이를 망가뜨림.
자연스럽게 독일이 프랑스보다 강성해져서 막을 수 없게 됨. 단순한 군사적 권한 동등은 프랑스의 상대적 약화 유발. 영국의 판단미스.
국제연맹의 일본의 만주점령 무시->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