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평화와 비스마르크 (국제정치학 예습과제 01)
디지털 형태로 남아있던 보고서들을 온라인화하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예전 작성일이 분명한 경우 그 작성일에 준하여 날짜를 기재했습니다.
Q. 유럽 국제정치에서 1815-54년 기간 동안 왜 분쟁이 적었고 협력이 많았는가? 비스마르크의 Real Politik 정책이란 무엇이고 왜 무너졌는가?
A. 1815년 이후 1854년까지의 기간 동안 유럽의 국제정치에 분쟁이 적었고 협력이 많았던 것의 원인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이란 한 국가의 힘이 다른 국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해지는 것을 막는 현상을 의미하고, 동시에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유럽의 국제정치는 당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의 다섯 주요 국가가 주도하는 다극 체제로 구성되었다. 이 국가들은 힘의 균형상태의 유지를 해당 기간 지지하였고, 이로 인해 전략적 균형상태가 지속되었다. 어떠한 단일 국가도 타국을 압도할 수 없었고, 압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국가 내적으로도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에 바빠 외적으로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으며, 미국이나 러시아는 대륙으로의 확장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 메테르니히의 외교술이 빛났다.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는 러시아 짜르의 대외 확장정책이 가져올 발칸반도의 불안정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하였다. 4자 동맹을 통해 국제적 안정을 꾀하고, 신성동맹을 통해서 짜르의 확장욕을 억제하였다. 특히 남쪽으로의 러시아의 확장은 이집트 및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과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를 저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결국, 1815-1845의 평화는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제적으로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고, 국내적으로는 각 국가의 주요 정책이 내적 안정화와 대륙으로의 확장에 집중되었음에 기인한다.
비스마르크의 Real Politika는 그의 현실주의적, 실용적 정책을 의미한다. 이를 국제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안보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관점과 부합하고, 독일 통일이라는 적극적인 가치판단이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로 대표되는 고전 현실주의에 세부적으로 속한다고 볼 수 있다. 1848년 혁명 이후 등장한 자유주의적인 정치 흐름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그의 현실주의적 노선은 독일의 통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앞서 비스마르크는 국가 내적으로는 군사력 강화 정책을 펼쳤고, 국제적으로는 프랑스와 협상하여 중립을 약속받았으며, 이탈리아와는 군사동맹을 맺었다. 이와 같은 철저한 준비 끝에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7주 만에 종결하고 프라하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 있어서도 남부 독일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하였고, 여러 유럽 국가들로부터 중립을 미리 약속받은 후 전쟁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 파리를 점령한 후 알자스-로렌지방을 할양받는 조건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처럼 전쟁을 준비함에 있어서 비스마르크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현실주의적인 정책은 평화 시에도 지속되었다. 독일 통일이라는 가치를 달성한 후에는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수호를 위해 또다시 현실적으로 대응하였다. 대표적으로 삼제동맹, 독일-오스트리아동맹, 삼국동맹, 이중보장조약 등을 체결하여 통일 독일의 안보를 보장하려 노력하였다. 이와같이 현실주의의 중점은 그 유동성에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Real Politik 정책은 국제관계에서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그 한계를 드러냈다. 터키에서의 러시아의 확장은 영국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전통적 우방이었던 독일이 영국의 편을 들었다고 판단하여 비스마르크에 대한 신뢰를 어느정도 상실하였다. 그 와중에 불가리아가 독일에 통합되면서 비스마르크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정치에서 대중의 의견이 중요시되면서,(영국의 의회, 프랑스의 공화정) 국제 동맹의 위력이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너무 복잡한 동맹으로 인해 오히려 그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효력이 반감되었다. 1890년에 이르러, 힘의 균형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이로 인해 유럽의 집단적 자살이라는 세계1차대전이 발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