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mpel의 연역-법칙적 설명에서 발생하는 무관성의 문제 해결 시도 (과학철학 비평 01)

Written on October 18, 2017

문제 정의

수업시간에 제시된 연역-법칙적 설명에서 발생하는 무관성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왜 범수(남자의 대표로서)는 지난 해 임신을 하지 않았는가?
범수는 아내의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했다.(조건)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모든 사람은 임신을 피한다.(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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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는 지난해 임신을 피했다.(결론)

왜 이 논증이 문제를 야기하는가? 이 상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위 논증이 연역-법칙적 설명의 4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만,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과학적 설명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 설명의 조건을 통과하지만 과학적 설명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곧 1종 오류(false positive) 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1종 오류가 발생한다는 판단에 동의한다는 것은 곧 무관성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시된 예시는 Hempel의 과학적 설명의 정의의 반례로서 기능한다.

문제 명백하게 하기

일반적으로, 1종 오류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조건을 강화 혹은 추가하는 것이다. 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하면, 이전에는 판단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통과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 조건이 되어야 할까? 추가적인 조건이 무엇인지를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업시간에 제시된 논증을 보다 명백한 형태로 변환시킬 필요가 있다. 보다 명백한 형태의 논증은 사고를 도울 뿐만 아니라, 숨겨진 전제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먼저 원 논증에서 제거해도 되는 부분을 쳐내면 다음과 같다.

범수는 피임약을 복용한다.
피임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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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는 임신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범수’는 어떤 남자 x을 명명한 것일 뿐이기에, 이걸 의미 손실 없이 바꿔줄 수 있다.

남자 x 는 피임약을 복용한다.
피임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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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x는 임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걸 기호화 하여 보다 다루기 쉽도록 할 수 있다.

(T := 피임약을 복용한다
P := 임신한다)
남자 x is T
T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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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x → ¬P

기호화 하고 나서 논증을 보면, 문제점이 보다 명확해진다. 지금 상황에서의 문제는, ‘남자 x → ¬P’ 가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조건 T로부터가 아니라, x 가 남자라는 조건에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새로운 기호로 표현하여 정식화 할 수 있다.

(M := 남자이다)
x is T(C1)
x is M(C2)
T → ¬P(L1)
M → ¬P(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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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 ¬P(R)

여기에서 C2는 원 논증에도 포함된 것이지만, L2는 없는 것을 추가한 것이다. L2가 원 논증에 있으면 조건 2번(설명항은 하나 이상의 일반적 법칙들을 포함해야 하며, 이들은 피설명항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 위배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C1, C2가 주어졌을 때, L1, L2중 하나만이 논증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직관이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가 기초적인 형태로 분명해진다. 우리의 직관은 1) C1, C2 & L1 ⇒ R (논증 전체를 A1이라고 부르자) 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C1, C2 & L2 ⇒ R (A2이라고 부르자)은 과학적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2) A2이 가능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A1은 과학적 설명으로서의 설득력을 잃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법칙 간의 우선성

A1과 A2가 둘 다 참인 명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A1은 바로 A2 때문에 과학적 설명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둘 사이의 유일한 차이인 L1과 L2가 서로 비대칭적 관계에 놓여있다고 추론 되도록 한다. L1과 L2가 완벽하게 독립적이었다면 오히려 이런 직관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L1과 L2의 우열을 상정하고, 이에 기반해서 논증의 과학적 설명성을 판단한다. 무엇이 법칙 간의 우열을 가능하게 하는가?

우연적 일반화 여부 판단

제일 먼저 해볼 수 있는 것은 혹시 L1이 사실 법칙이 아닌지 따져보는 것이다. 혹시 L1은 법칙적 일반화가 아니라 우연적 일반화가 아닐까? 우연적 일반화와 법칙적 일반화를 가르는 리트머스지는 반사실적 조건 진술(counterfactual conditional)이 참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피임약을 복용했다면, 임신하지 않는다(L1)
모든 부모가 항상 피임약을 복용한다면, 어떤 자식도 태어나지 않는다.(CFC) = 참

따라서 L1은 반사실적 조건 진술 기준을 통과하여, 법칙 임은 확실하다.

한시성/영구성에 따른 판단

두번째 판단 후보는 한시성과 영구성이다. 기본적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x가 남자라는 명제 C2는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영구적이다. 즉 x는 항상 남자이고, 남자가 아닌 경우가 없다. 반면 C1, 즉 x가 피임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x가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조금 과감하게 이 주장을 말하자면, 한 속성(M)은 경험적으로 봤을 때 영구적이고, 다른 속성(P)은 경험적으로 봤을 때 한시적이다. 영구성/한시성의 차이가 그것이 포함되는 법칙이 가지는 우열성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즉, 약을 복용하는 것은 남자인 것 보다 한시적이기에, 남자인 것이 있는 한에서는 상대적으로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판단 기준은 금방 몇 가지 반론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임약을 항상 복용하는 사람의 경우이다. 어떤 사람이 한 평생 피임약을 계속해서 근면하게 복용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피임약을 복용하는 속성은 경험적으로 영구적이다. 따라서 피임약의 복용과 남자 임은 서로 동등해질 수 있기에, 법칙의 위계를 서로 구분하고픈 우리의 직관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부분 법칙으로의 분해에 따른 판단

무관성의 문제를 명확히 하고, 법칙을 세부 법칙으로 비교해서 세부 법칙 간, 혹은 세부 법칙과 원 법칙 간의 관계를 비교하여 순서를 계산해보는 시도를 해 보았다.

T → ¬P(L1)
= H & T → ¬P (H := 인간)
= (H = M ⊕ W) ∧ (M & T → ¬P) ∧ (W & T → ¬P) (M := 남자, W := 여자)
= (H = M ⊕ W) ∧ L1m ∧ L1w (L1m := M & T → ¬P, L1w := W & T → ¬P)

이 분석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L1 법칙 내부에 M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L1m이라는 부분 법칙에서 L2(M → ¬P)의 좌항인 M이 등장하였다. 말로 풀면, L1의 부분 법칙에서 L2의 구성요소인 M이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L1과 L2 같은 법칙 간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은 보여주는 것 같다. L1m은 L2가 개입할 때 T와 무관하게 참일 수 있다. 이를 보편화해서 서술하면, L1과 L2의 관계에서 L1의 좌항 P 없이 L2의 좌항 M만으로 참이 될 수 있는, 법칙 L1에 속하는 어떤 부분집합 L1s가 존재(∃ L1s)한다. 이 관계가 한 방향으로만, 그러니까 L1과 L2를 뒤집은 방식으로만 적용되지 않는다면, L1과 L2의 관계는 비대칭적이고, 이것에 기반하여 법칙 간의 순서를 상정할 가능성이 남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희망(정확히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학생이 기호를 풀기 전에 가졌던 희망)은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간단한 형태로 L2를 쪼개 볼 수 있다.

M → ¬P(L2)
= (T & M → ¬P) ∧ (¬T & M → ¬P)
= L2t ∧ L2¬t

L2t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L1과 L2가 서로 대칭적으로 부분 법칙 의존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부분 법칙을 통해서 비대칭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증에 실패했음에도, 분해해서 조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논점을 좁히는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직관이 부딪히는 포인트는, L1m, 즉 ‘M & T → ¬P’ 임은 분명해졌다. L1의 부분 법칙인 여기에서, T보다는 M이 ¬P에 대한 설명력의 보다 강한 근원이라는 것이다. 자연어로 옮기면, 남자인 것이 피임약을 먹는 것보다 임신하지 않은 것을 보다 잘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앞 문장에서 드러났듯이, 결과적으로 산출된 문장은 최초 논증의 동어 반복으로 보인다. M과 T가 동등한 조건으로 주어지고, ¬P가 결과로 나온다는 점에서 이 결과는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지 못한다.

인과에 따른 판단

결국, 마지막으로 남으면서 가장 정공법에 해당하는 인과에 따른 기준이 있다. 인과에 대한 혐의는 원 논증을 인과를 사용한 형태로 바꾸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x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피임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다. 피임약은 x가 임신하지 않음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강력한 직관이 이 문장을 승인한다. 역으로, x는 바로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임신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인과를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두 법칙은 차별 점이 즉각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야말로 Hempel이 어떤 수를 써서든 가장 피하고 싶은 기준이라는 것이다. Hempel은 인과같은 것이 과학적 설명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인과라는 모호한 것을 과학의 세계에서 축출함으로써, Hempel은 진정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려내, 후자가 명백히 사기꾼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무관성의 문제 이면에 숨어있는 인과를 수용하게 되면, 무관성의 문제는 ‘법칙에 의거하지 않는 설명의 문제’ 와 같은 것이 된다. 두 문제 모두 인과적 설명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직관과, Hempel의 엄격한 과학적 설명의 정의 사이에서 헤매는 문제인 것이다. 무관성의 문제 이면에 숨어있는 인과를 거부하게 되면, Hempel은 무관성의 문제가 사실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직관의 경고를 감내하는 방향으로 나가던가(Hempel의 까마귀에서 심리적 착각을 주장했듯이), 인과가 아닌 새로운 과학 설명의 기준을 제시할 책임을 지게 된다. Hempel은 아마도 전자의 입장에 설 것으로 생각된다.
전자의 입장을 택할 때 가능한 전략 중 하나는, 마땅치는 않지만, 인과와 연역 추론이 모두 있어야 과학적 설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인과 그리고 연역 추론이 있어야만 과학적 설명이고,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사이비 과학이 과학의 영역을 넘보는 것을 Hempel이 의도한 만큼은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연역적 추론이 1종 문제를 야기했던 것처럼, 이렇게 강화된 기준은 2종 문제를 야기한다. 즉, 연역적으로 도출되더라도 인과를 발견하지 못하면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없다. 이 주장의 문제는 많은 과학적 법칙들이 인과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법칙에게 요구되는 최소 조건은 무방향적인 상관 관계이지 일방향적이면서 강력한 인과는 아니다. A라는 사건이 있을 때 B라는 사건이 항상 있다는 법칙은, 상관 관계이나 인과는 아닐 수 있다.

결론

결국 Hempel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몇 가지로 축소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인과를 거부하고 원래 주장에 머무르면서, 우리의 직관이 사실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과학적 설명은 연역 밖에 없고, x는 남자이더라도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임신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직관은 심리적 착각인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인과를 수용하되, 연역과 and 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많은 훌륭한 과학적 설명을 선 밖으로 밀어내고 만다. 심리적 착각을 주장했던 Hempel이라면 과학적 설명을 보다 타이트하게 가져가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가능성은 새로운 기준을 찾아서 법칙들을 비교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자가 겪은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5번째 기준을 탐색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Hempel도 네 가지 조건에 만족했던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이 세 방법론 중에서, 어느 한가지를 택해야만 무관성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